나에게 “기회”가 된 T&M

나의 꿈은 우리나라가 종자강국에 되는데 기반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꿈 하나로 베트남이라는 나라에서 6개월 동안 농업인턴을 하였고 이제는 선진농업을 배우고자 이 땅 뉴질랜드에 왔다. 그리고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잘 헤쳐나가리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T&M에 도착해서 내가 한 일은 화분에 이름표를 꽂는 단순 작업이었다. 하루 8시간 반 동안 쉬는 시간은 20분이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외에 1초도 손이 쉬어선 안된다. 점심시간도 30분이다. 처음에는 한국과 너무 다른 문화에 힘이 들었다. 손이 다 부르트고 $16나 하는 고급장갑도 2주 만에 너덜해졌다. 새신발도 2달 만에 너덜해져서 구멍이 났다. 나는 수 십개 종류의 이름표를 하루에 천개씩, 그렇게 5개월 동안 꽂는 일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종류가 다양한 육묘를 접할 기회가 있을까? 없다. 이건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는 말처럼.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식물이 하나의 종자에서 꽃을 피우기까지, 열매를 맺기까지 보는 걸 생각하며 이곳에 왔지만 수많은 종류의 어린 종자만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구도 접할 수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슬리는 뿌리가 워낙 단단하게 형성되어 버릴 때도 힘이 겹고 파슬리와 샐러리는 형태가 너무나 흡사하여 향기로 확인을 해야 한다. 파슬리와 샐러리, 고수, Basil은 육묘 자체에 특유의 향이 나며 Aster는 꽃이 피지도 않았는데 육묘에서 향이 난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베트남사람이 고수를 좋아하듯 Blondi를 즐겨 먹으며 키위가 즐겨 먹는 Lettuce의 종류는 6가지정도로 함축할 수있다. Lettuce 품종 중 “Drunken women”은 상추가 다 생육을 했을 때 술 취해서 볼이 발간 여성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토마토의 육묘는 다른 육묘들에 비하여 가늘고 여려서 seeding 할 때 상당히 힘이 들지만 토마토의 Russian Red 품종은 육묘가 굵고 짧아 튼튼하여 seeding하기에 좋다. 라벤더 품종의 종류에서는 “신데렐라”가 붙는 것이 많다. 뉴질랜드의 고추는 한국 고추육묘와 다르게 좀더 굳고 딱딱하며 색깔이 옅다.

이처럼 5개월 동안 바보처럼 이름표만 꽂은 것이 아니다. 육묘 하나, 하나의 생김새, 특징, 그들의 이름부터 그들의 종류까지 굳은살로 번진 내손이, 내 눈이 그걸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뉴질랜드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 나를 사람에게 의지 않아도 될 만큼 강하게 길러주었다. 혼자의 힘으로, 혼자의 지혜로, 나만의 용기로 세상 앞에 당당히 나아가라고 나의 날개를 더욱 단단히 견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자연과 함께 하는 그들. 뉴질랜드 키위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단순 노동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 회사의 기계시스템이라던지 경영시스템에 대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계만 10억이 넘게 투자할 정도로 고가의 제품들이다. 씨앗도, 육묘 트레이를 만드는 모든 것들을 기계를 통해 생산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루에 1000개가 넘는 태그를 꽂는다. 경영주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익이 창출되는 순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이나라, 뉴질랜드에서만 이 기계가 가치있게 된다. 이 곳 모든 국민들이 가든을 가지고 있고 가드닝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화분을 만들기전에 한국에서 수입한 트레이에 씨를 뿌려 육묘가 어느정도 자란뒤 화분으로 옮겨진다. 그 수만개의 트레이가 한국에서 수입되어 들어왔다는 점에도 놀랐다. 뉴질랜드란 나라에 ‘농업’이란 것이 국민의 관심에 의해 가치가 높아졌다는 기분이 들었다. 단순노동이나 이 화분하나로 수십명의 우리나라 회사 식구들이 먹고 살아간다. 이만큼 이나라에서는 ‘농업’이 어마한 것이다. 뉴질랜드가 농업선진국이 될 수 밖이 없는 이유는 이나라의 지형, 문화, 사람들의 관심도에 의해 생겨졌다는 것을. 농장에는 키위, 인도, 중국, 필리핀, 한국 사람들이 공존하여 일을 해나간다. 이곳에서 5개월 동안 일하면서 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뉴질랜드의 문화와 농업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한 것이라 지나치기 쉽지만 사실 엄청나게 중요한 사실이다. 그 나라의 국민의 관심도와 문화가 이 나라를 농업선진국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뉴질랜드는 도로 하나도 자연 있는 그대로의 굴곡대로 만든다. 그래서 굴곡이 엄청나게 심하다. 길거리에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연’과 함께 어울러 살아가고 있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비를 맞으며 길을 다닌다. 이 사람들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과 어울려져있다. 자연을 거슬려 하지 않고 그들의 삶 자체가 그들의 의식하지 않아도 무의식 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러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과 어울러져가는 이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의식 속에서 농업이 단순한 1차산업이 아닌 뉴질랜드 현지 사람들의 숨결이며 그들의 모든 것을 말하고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나라 농업이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점은 많으나 이들의 농업에 대한 의식과 문화를 조금이라도 닮게 된다면 우리나라 농업을 지금보다 더 희망적으로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꿈 나의 미래...

나의 꿈은 우리나라가 종자강국이 되는데 기반을 닦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1살 때, Monsanto 미국지사를 방문하고 생겼던 꿈이다. 이러한 독점적인 기업으로 인해 우리나라 는 청량고추까지 잃었다. 누군가 이 꿈이 너무나 추상적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꿈에 한 발자국이라도 다가가고자 나는 내가 20년 후, 10년 후, 5년 후, 1년 후 무엇을 해야 하는지 plane book에 적어왔다. 그리고 실천해 왔다. 이 계획대로 반드시 가지 않더라도 괜찮다. 난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곳이 어디든, 언제든 ‘지금 나’에게 가장 적합한 곳에 있을 것이다. 그곳이 대학원이라면 1년후 나는 대학원에 진학해 있을 것이고 그곳이 기업이라면 나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농업, 뉴질랜드의 농업. 모두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이 경험들이 빛을 발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굳게 믿는다.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라고. 그리고 절대 헛되지 않음을 나는 확신한다. 손에 생긴 주름살 만큼, 내가 흘린 눈물만큼, 나는 더욱더 강해지고 내가 희망하고 꿈꾸는 것들은 더 커진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던지 두렵지 않다. 이제는 전혀 두렵지 않다. 이 경험이 앞으로 내가 나의 평생의 꿈을 이뤄나아가는데 큰 기반이 되었음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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